[명작에게 길을 묻다]에서 데미안을 읽다. "읽다"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은 듯 하다. 예전에 약간의 이상한 결벽증 같은 것이 있었는데 노래를 듣거나 책을 보거나 할때 노래는 그 노래가 있는 앨범을 다 들어야지 들은 듯 했고 책은 목차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읽어었다는 느낌이 있었다 지금은 책은 중간 중간씩 보고 음악도 듣고 싶은 노래를 들었는데 예전에 잘 그렇게 하지 못했다.
[데미안]을 "보았는데" 내가 읽었던 그때를 잠시 생각 할 수 있었다. 그때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은 "구원", "이탈", "깨닫음" 뭐 그런 것들이었는데 [데미안]에는 그런 것들이 다 있었다. "구원이란 것은 있을까", "구원이 있다면 난 누구에게 구원 받을 수 있을까"... 뭐 그런 감수성이 있었던 시기에 [데미안]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. 그 도움이란 "나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는 것". "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. 알은 곧 세계다." 결국, 구원이라는 건 내 세계에서 깨어나야 하고 그건 내가 한다는 것이였다.
[데미안]을 "보았는데" 내가 읽었던 그때를 잠시 생각 할 수 있었다. 그때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은 "구원", "이탈", "깨닫음" 뭐 그런 것들이었는데 [데미안]에는 그런 것들이 다 있었다. "구원이란 것은 있을까", "구원이 있다면 난 누구에게 구원 받을 수 있을까"... 뭐 그런 감수성이 있었던 시기에 [데미안]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. 그 도움이란 "나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는 것". "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. 알은 곧 세계다." 결국, 구원이라는 건 내 세계에서 깨어나야 하고 그건 내가 한다는 것이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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